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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타 레터
하카타레터 10. 우리 교회에 서리집사가 없는 이유 (私たちの教会に署理執事がいない理由)
Author
fvc
Date
2024-08-03 11:33
Views
2000
하카타레터 10. 우리 교회에 서리집사가 없는 이유 (私たちの教会に署理執事がいない理由)
후쿠오카비전처치에는 서리집사가 없습니다. 처음 교회를 나오는 분들은 교회의 직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서리집사가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집사’’라고 부르지 않고 ‘형제, 자매’라고 부르고, 그렇게 불러지니 너무나 어색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단’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때문에 서리집사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사실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우리교회에 서리집사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첫번째로 성경에 서리집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리집사’는 교회에 집사를 세워야 하는데, 집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이 없었던 시기에, 집사는 아니지만 집사의 역할을 좀 해 달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한국 기독교 속 아픈 역사의 산물입니다.
지금도 교회에 봉사할 사람이 없고, 교회가 어려운 특별한 상황에서는 서리집사를 세워야 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은 그런 의미로 서리집사를 매년 임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큰 이유는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서리집사’를 검색하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한 해마다 임명되는 것이 관례이며 근래 들어서는 그 사람의 행실이나 신앙, 인격보다는 형편이나 처지를 고려해서 직분을 남발하는 경향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면 믿는 자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교회 병폐 중 하나인 교회 직분에 대한 계급의식을 개혁해 나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새 교회의 직분은 봉사를 한다는 의미보다는 명예로 자리잡아 버렸습니다. 때로는 그 명예 때문에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동기가 되면 더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은혜로 섬겨야할 사역은 직분이 주어진 사람이 가지는 힘(공로)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서리집사라도 되어야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집사라는 용어는 안수집사일 때는 교회 안에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서리집사는 성경에 없고, 다른 나라에도 없습니다. 더 웃기는 현상은 교회에 이제 막 출석하기 시작한 새가족에게도 그냥 부를 마땅한 것이 없어 ‘집사님~’하고 불러버립니다. 구원의 확신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집사라고 부르게 되면, 앞으로 그 사람은 구원받은 분인지 그 누구도 확인을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집사를 하다가 언젠가는 그 상태로 교회의 장로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문화 속에서 ‘서리집사→안수집사→장로(여성의 경우, 서리집사→권사)’라는 도식이 무의식 중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성경적으로 돌아가기로 정하고 성경에 없는 ‘서리집사’는 사용하지 말기로 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에,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성경적인 용어입니다(막3:35). 물론, 오랫동안 서로를 ‘~집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온 분들이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의 차이가 크면 ‘형제, 자매’라는 용어도 맞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님’, ‘누님’, ‘오빠’, ‘동생’, ‘삼촌’, ‘이모’,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부르는 것을 크게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너무 어색하면 ‘**씨’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너무 어색하면 이전처럼 부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이게 구원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교회 내의 건전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면 10~20년 후에, 우리의 다음 세대는 충분히 적응된 새로운 교회 문화 속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우리 교회에 와서 정착을 하는 새가족에게서 발견합니다. 이들은 ‘집사님’으로 부르기보다는 ‘형제님’, ‘자매님’으로 부르는 것에 이제 익숙합니다. 즉,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바뀔 수도 있는 문화라는 것입니다. 후쿠오카비전처치에 서리집사가 없다는 사실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우리가 교회의 개혁을 선도했다는 자부심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마가복음 3: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함께 섬기기를 소원하는 김주영목사.
후쿠오카비전처치에는 서리집사가 없습니다. 처음 교회를 나오는 분들은 교회의 직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 서리집사가 없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에서 ‘**집사’’라고 부르지 않고 ‘형제, 자매’라고 부르고, 그렇게 불러지니 너무나 어색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단’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때문에 서리집사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 사실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우리교회에 서리집사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첫번째로 성경에 서리집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리집사’는 교회에 집사를 세워야 하는데, 집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이 없었던 시기에, 집사는 아니지만 집사의 역할을 좀 해 달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한국 기독교 속 아픈 역사의 산물입니다.
지금도 교회에 봉사할 사람이 없고, 교회가 어려운 특별한 상황에서는 서리집사를 세워야 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은 그런 의미로 서리집사를 매년 임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큰 이유는 명예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서리집사’를 검색하면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한 해마다 임명되는 것이 관례이며 근래 들어서는 그 사람의 행실이나 신앙, 인격보다는 형편이나 처지를 고려해서 직분을 남발하는 경향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보면 믿는 자로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한국교회 병폐 중 하나인 교회 직분에 대한 계급의식을 개혁해 나가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새 교회의 직분은 봉사를 한다는 의미보다는 명예로 자리잡아 버렸습니다. 때로는 그 명예 때문에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동기가 되면 더 높은 자리에 대한 욕심이 생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은혜로 섬겨야할 사역은 직분이 주어진 사람이 가지는 힘(공로)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서리집사라도 되어야 교회에서 인정을 받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집사라는 용어는 안수집사일 때는 교회 안에서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서리집사는 성경에 없고, 다른 나라에도 없습니다. 더 웃기는 현상은 교회에 이제 막 출석하기 시작한 새가족에게도 그냥 부를 마땅한 것이 없어 ‘집사님~’하고 불러버립니다. 구원의 확신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집사라고 부르게 되면, 앞으로 그 사람은 구원받은 분인지 그 누구도 확인을 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집사를 하다가 언젠가는 그 상태로 교회의 장로도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 문화 속에서 ‘서리집사→안수집사→장로(여성의 경우, 서리집사→권사)’라는 도식이 무의식 중에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성경적으로 돌아가기로 정하고 성경에 없는 ‘서리집사’는 사용하지 말기로 정한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에,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가장 성경적인 용어입니다(막3:35). 물론, 오랫동안 서로를 ‘~집사’라는 명칭으로 불러온 분들이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의 차이가 크면 ‘형제, 자매’라는 용어도 맞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님’, ‘누님’, ‘오빠’, ‘동생’, ‘삼촌’, ‘이모’,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부르는 것을 크게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너무 어색하면 ‘**씨’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런데 그것마저 너무 어색하면 이전처럼 부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이게 구원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교회 내의 건전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면 10~20년 후에, 우리의 다음 세대는 충분히 적응된 새로운 교회 문화 속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 가능성을 우리는 우리 교회에 와서 정착을 하는 새가족에게서 발견합니다. 이들은 ‘집사님’으로 부르기보다는 ‘형제님’, ‘자매님’으로 부르는 것에 이제 익숙합니다. 즉,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바뀔 수도 있는 문화라는 것입니다. 후쿠오카비전처치에 서리집사가 없다는 사실이 어느 시점에 가서는 우리가 교회의 개혁을 선도했다는 자부심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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